본문 바로가기

작가 정명석

<시좋아> 영감의 시 7집 - 시인 정명석

정명석 著 시좋아 영감의 시 7집

 

 

책소개

『시 좋아』는 정명석 시인이 발표한 일곱 번째 시집이다. 이 책에는 70편의 시가 〈오 척 방〉, 〈열 동 말 동〉, 〈때는 간다〉라는 세 가지 주제로 나뉘어 수록돼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 대부분은 시인이 수난기를 보내던 중, 2016년 가을부터 2017년 겨울 사이 ‘고독한 날’에 ‘오 척 방’을 노크하며 찾아온 ‘시님’과 함께 써 내려간 시들이다.

시인은 누구나 사계절을 맞듯 ‘희로애락’을 느끼며 인생길을 같이 가는 사람들에게 시로 사연을 전하고 안부를 묻는다. 고통을 당하는 중에 희망이 더 반짝이고 애태움 속에 사랑이 더 뜨거워짐을, 그리고 숨 막히는 시공간이 자기 초극, 신과의 소통을 더 촉진하여 자유롭고 영원한 시공간의 세계로 이끌어 줌을 말한다. 평소 신앙인으로서 ‘초막이나 궁궐이나 내 주님을 모신 곳이 천국’이라고 노래해 왔듯이 신의 섭리 내에서는 ‘들어가도 나와도 복(福)’이라는 긍정적인 신념 아래, 고통스러운 환경을 사랑의 축제 공간(‘혼인 잔칫집’)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되레 넓은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안부가 걱정되어, ‘행여 세상에 속고 울지 않기를… 바람에 흔들려 쓰러지지 않기를…’ 기도하는 시인의 마음을 시로 전하고 있다.

시인이 펴낸 잠언집에 ‘사람은 생각으로 살아간다. 생각이 살아 있으면 어디에 있든지 환경에 상관없이 생각하는 대로 잘하고 잘된다.’라는 경구(警句)가 있다. 시도 시인의 살아 있는 생각의 산물이다. 『시 좋아』는 설한풍을 뚫고 피어난 꽃같이 깊은 고통에서 길어 올린 깨달음을 읊은 시편이다. 전 세계가 고통 중에 신음하며 서로 가까이할 수 없는 요즘, 이 시들을 음미하면서 시인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과 진심을 마주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시인이 찾은 진정한 희망을 함께 발견하고 근본의 위로가 될 영혼의 빛을 얻기 바란다.

 

 

저자 정명석

저자 정명석은 1945년 충남 금산에서 출생했다. 1995년 월간 〈문예사조〉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후, 시를 4000편 정도 썼다. 『영감의 시』 시리즈 일곱 권과 시선집 『내 고향 월명동 표적의 골짜기』를 발표했으며, 한국 시문학 100년사를 총망라한 『한국 시 대사전』(2011)에 그의 시 10편이 등재되었다.

저자는 10대 때부터 산에서 기도 생활을 하고 성경을 2천 번 이상 읽으면서 배우고 깨달은 말씀을 세계 70개국 사람들에게 전해 온 종교 지도자로서, 시집 외에도 『구원의 말씀』, 『성자와 대화』, 『역사의 기록-영의 세계』, 설교집과 잠언집 등 백 권이 넘는 종교 서적들을 집필했다. 또, 1966~1969년 베트남전쟁에 두 차례 참전한 체험을 바탕으로 시와 산문을 써서 엮은 『전쟁은 잔인했다. 사랑과 평화다 1~4권』(2018)도 펴내어, ‘생명 사랑’과 ‘세계 평화’에 대한 감동의 메시지를 전한 바 있다.

문학뿐 아니라 다양한 예술에 조예가 깊은 저자는 조경, 미술, 음악, 스포츠로 세계 문화 교류를 꾸준히 해 왔다. 특히 그림과 붓글씨로 다수의 작품을 남겨 유럽과 아르헨티나 전시에서 주목받았고, 그의 네 번째 시집 『시로 말한다』에는 묵필로 직접 그린 시화들을 담아 선보이기도 했다.

 

 

출판사 서평

1. 신심(信心)과 시심(詩心), 고통 속에서 희망의 꽃을 피워 내다

『시 좋아』는 정명석 시인이 ‘영감의 시’ 시리즈로 일곱 번째 세상에 내놓는 시집이다. 시인이 오래도록 꽉 막힌 공간에 머물면서 더없는 고통을 겪을 때 쓴 시들이다. ‘죽은자/ 들어가/ 눕는관’ 같은 오 척(尺) 너비의 방, 손바닥만 한 창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아래에서 종일 종이와 펜만 마주하며 지내야 했던 때(〈오 척 방〉), 시인은 성삼위 앞에 기도하는 구도자요 글을 쓰는 작가로서 그 고통 속에 파묻히지 않고 희망의 꽃을 피웠다.
그에게 ‘시’란 자신과의 대화는 물론 신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언어였기에, 그의 시는 곧 고백의 기도가 되고, 찬미의 노래가 되고, 사랑을 쏟는 일이 된다.

주님 안 오시면
내가 뭐가 필요하랴

주님 오시면
내가 뭐가 필요하랴 - 시 〈주가 필요하다〉 전문


한 줄기 폭포수같이
흩어짐이 없이
내 사랑을
삼위 위해
쏟아 내렸네

(…)

폭포수 같은 내 사랑은
변함없이
영원하리라 - 시 〈폭포의 사랑〉

시인의 신심에서 비롯된 사랑은 사람과 만물을 대하는 태도로 연결된다. 그 대상이 작고 볼품없어도, 마음을 몰라주고 말이 통하지 않아도, 낮은 곳 혹은 어두운 곳에 웅크리고 있더라도 등 돌리지 않는다. 허물은 덮어 주고, 개성은 귀하게 여기며 대우해 준다.

‘지금은 말 안 듣고/ 볼 만한 것도 없고/ 우러러볼 것도 없어도/ 크면/ 잘한다 (중략) // 어서 잘 크게/ 투자도 하고/ 관리도 하고/ 희망과 기쁨으로 이끌며/ 용기 주며/ 힘 있게/ 매일 행하라’ (〈희망 2〉)

‘어디 있느냐/ 어디로 갔느냐/ 찾고 찾아도 없구나 // 너 위해/ 진수성찬 차려 놓고 찾는다/ 너만 없으면/ 못 참고 찾는다’ (〈블랙 여치 사연〉)

‘너 없으면/ 애간장 태우며 찾는데/ 옆에 있으면서도/ 한마디 말이 없냐 // (중략) // 무진장 쓰는 너/ 없으면 찾는 내 마음/ 알아라’ (〈받침대〉)

‘죄는 숨겨 주고/ 의는 드러내고/ 기르고 키우다 보면/ 죄는 씻기고 사라져서/ 의만 빛나리라’ (〈주의 마음〉)

이와 같이 시인의 ‘하늘’ 님에 대한 사랑은 ‘땅’의 님들을 보듬고 다독이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주의 마음’으로 품어 주는 그 사랑은 따뜻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어, 우리는 그의 시에서 희망의 빛을 보고 구원을 감지하게 된다.
대개 ‘희망은 먼 데 있고/ 불행은 앞에 있으니’(〈희망1〉) 희망 좇기를 망설이다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곤 하지만, 시인은 ‘희망’이란 본디 결핍된 상태, 불행한 현재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 지점에서 ‘희망 보고 떠나’기만 하면, 그리고 희망을 ‘기르고 키우다 보면’ 얻게 된다는 진리를 노래한 것이다.

2. 인간과 창조주, 그 존재의 본원적 통찰

‘의지’를 갖고 나아가는 것, 그 자체가 희망을 이루는 길이 된다. 작은 일도 저절로 되는 것은 없기에 ‘사람도/ 가만히/ 있으면/ 가지지/ 않는다’(〈실천 천국〉)고 하며, 인생 살아가는 동력이 되는 ‘생각과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운다. 인간이란 존재를 창조주가 ‘자기 형상 모양으로 창조해’서, 우리는 신과 닮은 ‘무한한 존재자라’ 잠재 능력을 지녔으니 ‘하면/ 무한히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무한 능력〉). 그래서 시인은 환경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 기록 세우기에 도전하듯 치열하게 사는 삶을 보여 준다.

어디까지
실력인가
잠재적 능력 있나
가 보자

다리에 힘이 없어
주저앉도록
몸뚱아리
한계선에 닿아서
녹초 장수 될 때까지
생각이 안 나
뇌가 굳을 때까지다 - 시 〈떠나자〉 일부

시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시인은 산에만 올랐다고 해서 저절로 시상이 솟아나 산에 대한 시가 읊어지는 것이 아니라, 산 정상에 오르듯 ‘생각’의 고도를 높여야 고상한 ‘시님’을 만나게 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시작법(詩作法)을 드러낸 시가 바로 〈시님〉인데, 시님이 ‘언제또/ 오시나/ 살며시/ 물으니/ 생각을/ 하여야/ 온다고/ 하셨네’라고 귀띔해 준다. 그 ‘생각’을 따라 ‘마음문/ 살며시/ 열고서’ 영적 감흥이 밀려올 때 착상을 얻어 시를 쓰게 되기 때문이다.

‘할 일은 많은데/ 시간은/ 너무도 없구나 // 전능하신 하나님 생각으로/ 해야만이/ 가능한 일이다 // (중략) // 축지다/ 날갯죽지를 펴/ 날아서 행했다 // 힘으로도 능으로도/ 안 되고/ 신으로 되었다 // 매일/ 기적의 역사다’ (〈성령 의존〉)

‘날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님 모시고/ 인구름과 함께/ 사랑과 기쁨의 잔치다’ (〈작품〉)

시인은 무슨 일이든 혼자 하지 않는다. 시를 쓸 때 생각을 집중함으로 ‘시님’을 만나 같이 쓰듯, 늘 동행하는 ‘님’이 있다. ‘하나님, 성령님, 성자 주님’이라는 삼위의 신이다. 신의 생각으로 날개를 달아서, 혼자 힘으로는 안 되는 많은 일들을 해내는 것이다.
시인에게 있어 삼위의 존재, 신과의 만남은 영험한 힘을 갖게 한다. ‘한증탕’ 같은 더위나 혹독한 추위와 싸우며 견뎌야 하는 현실에서 생각의 몰입을 통해 도달하는 신과 일체 된 세계, 그 세계에 들어서면 황홀하다. 육체성을 벗어나 ‘날갯죽지를 펴’는 순간이며, ‘기적의 역사’를 낳는 순간이며, ‘사랑과 기쁨의 잔치’를 여는 순간이다. 고통이 환희로 치환되면서 삶을 지탱해 갈 생명력을 획득하게 되고, 삶은 희망의 실체가 된다.

‘전능자/ 하나님/ 성령님/ 성자님/ 뜻대로/ 사는맛/ 그맛이/ 얼마나/ 보암직/ 먹음직/ 하고도/ 기쁜지/ 아느냐 // 육신도/ 영혼도/ 기쁨과/ 흥분이/ 극치에/ 닿음을/ 이세상/ 그누가/ 알쏘냐/ 삼위체/ 뜻대로/ 산자만/ 안단다’ (〈사는 맛〉)

‘영의 세상/ 신비하고 영원하다/ 한번 가면 영원히 사니/ 이왕이면/ 육이 좋게 살아/ 좋은 데로 가야 한다’ (〈영의 길〉)

인간은 생(生)과 사(死)를 동시에 경험하며 살아간다. 누구나 태어나서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존재 세계를 탐구해 온 시인은 ‘영’의 존재를 통해 불멸을 이야기한다. 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소멸을 영원한 생명으로 전환시키는 유일한 존재체다.
그런데 ‘영이 가는 세상을 결정짓는 건 육의 삶’이라고 인식한 시인은 초월의식에만 경도되지 않는다. 영원의 시공간을 지향하되 현존에 충실하고 열렬하다. 현재의 몸부림으로 인해 ‘좋은 데’로 갈 수 있고, 고통마저도 ‘오직 연단’의 계기가 되어 ‘육이 좋게 살아’가게 하는 생성의 힘을 갖고 있다는 것, 이 깨달음은 인생의 중심을 잡고 ‘육쪽도 영쪽도’ 균형 있게 살아가는 길이 된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의 말처럼 인간의 해방은 근대 이후로 잃어버린 거룩한 체험을 다시 찾는 데 있다면, 시인의 작품은 인간 해방을 실현한 시로서 진리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는 성구의 뜻을 헤아려 보게 한다.

3. 같은 날 다른 시, 그리고 운율의 맛

정명석 시인은 삶 속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영의 세계까지 깨달은 것을 꾸밈없이 진솔하게 시로 쓴다. 시를 좋아해서 쓰고 마음에서 우러나와 쓰니, 하루에 수십 편씩 쓰기도 한다. 그 작품들로 『영감의 시 6 - 하루에 쓴 시』(2019)를 펴낸 바 있으며, 새로운 시집 『시 좋아』에도 같은 날에 쓴 시들이 많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시상(詩想)이 겹치지 않고 다채롭다는 점이 특징적인데, 2017년 12월 22일 작품의 경우 15편을 한날에 썼다고는 가히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각각 다른 이미저리(imagery)를 구현하고 있다.
또, 언어의 간결성과 운율의 맛을 살려 써서 그의 시는 리듬을 타며 읊기에 좋다. 『시 좋아』에 실린 작품들은 한 행의 음절 수를 3 또는 4로 조직해, 자수를 일정하게 맞춘 규칙적인 율격이 두드러진다.

옛것을
장사를
지내듯
개인도
민족도
세계도
모두다
깨끗이
장사를
지내라 - 시 〈소각〉 일부

그리고, 두음이나 첫음절의 반복으로 압운을 이루어 시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첫음절 ‘그’, ‘네’, ‘용’의 반복

용이 되고 싶으냐
그러면
네 머리를 잘라 버리고
네 몸을
용의 머리에 붙여라
그럼 네가
용의 몸이 되리라 - 시 〈용이 되려면〉 전문

*두음 ‘ㅁ’의 반복 / 말음 ‘ㄹ’과 ‘ㅁ’의 반복

물만 끓이면 무엇해
뭘 넣고 끓여야지

맘만 끓으면 무엇해
몸 실천하며 끓어야지 - 시 〈같이 끓여야 해〉 전문

*두음 ‘ㄱ’, ‘ㄴ’, ‘ㄷ’의 반복

가만히 있으면
거기에 처한 그 세상이다

딴 데 가야
더 좋은 딴 세상이다

나와야
누린다 - 시 〈딴 세상〉 전문

이와 같이 시인은 간결한 시어들로 음수율과 압운을 적절히 사용하고 있다. 시의 리듬은 인간의 서정에 활력을 불어넣고, 시의 화자와 청자의 교감을 원활하게 한다.
짧은 호흡으로 압축된 한 편의 시에 인생의 순리와 인생 살아가는 법이 함축돼 있으니, 한 편 한 편을 음미할 때마다 가슴의 울림이 클 것이다.

_ 2020년 9월. 도서 명문